01 여행의 동기

비행기로 한시간을 날아가면 그곳에 도착한다.
우리는 그곳을 흔히 '가깝고도 먼나라'라고 이야기한다.
나에게도 일본은 그런 곳이였다. 거리는 가까울지 몰라도 마음으로 느끼는 거리는
남미의 그 어느나라보다 멀고 멀게 느껴지는 곳. 특히나 도쿄는 서울이랑 별반 다를것 없는
동네라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매력적인 여행지로 다가오지도 않았다.

그런데 올해 겨울.
일주일 정도의 여행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고, 나는 어디로 가면 좋을가를 고민하다가 일본을 떠올렸다.
눈, 스키, 온천, 라멘, 스시, 소바,  커피, 하루키...나를 자극하는 단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자연스럽게 여행 스토리가 짜여지며 꼭 가봐야겠단 생각이 떠나질 않는게 참으로 요상한 일이였다.
'도쿄에서 가까운 '나가노'에 가서 스키를 타고 온천도 하고 스시도 먹고 라멘도 먹고 
도쿄 시내를 돌아다니며 멋진 커피집에서 커피도 마시고 그렇게 여행하는거야.'
사실 여행의 동기는 단순하다.  어디가서 무얼 먹고 싶어진다거나 뜨끈뜨끈한 물에 몸을 담구고 싶다거나 하는

시시콜콜한 이유들이지만 그런 정확한 이유를 달고 여행을 하게 되면 여행이 한결 풍요로워진다. 정신적으로.
그래서 '그곳'에 가게 되었다.
더불어 나의 친동생도 그곳에서 머물면서 공부하고 있는 중이기에 '그곳'을 가야하는 이유는 충분히 성립되었다.

김포-하네다 JAL 항공권을 거머쥐고 김포공항으로 향한다.
(하네다 공항이 도쿄 시내와 잘 연결되어 있어서 가격이 조금 비싸더라도 하네다로 가는 비행기를 탈것을 추천한다.)
일반적으로 하네다 공항에 도착하면 공항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오다이바를 둘러보기를 권장하지만,
우리는 다음날 오기로 하고 모노레일을 타고 곧장 신주큐로 향했다.
구지 신쥬쿠로 가야할 만한 이유는 딱히 없었다. 무계획적인 여행의 맛이라고나 할까?
일본여행에서  '맛있는 기억'의 처음은 신쥬쿠역에 도착하자마자 발견한 빵집에서 사먹은 슈크림빵이다.
1개에 500엔하는 슈크림 빵 _ 빵하나에 5000원이라니 선뜻 내키진 않았지만
"언니가 오면 꼭 사주고 싶었어"라는 동생의 호의를 거부하진 않았다. ㅋ
그날 이후 나와 동행자는 매일 슈크림 빵을 사먹었다.
참고로 이 슈크림빵은 일본 시내 곳곳에서 판매하니 슈크림 빵의 유혹을 뿌리치지 말고 받아들이길 바란다.
신쥬쿠역으로 간 이유는 도쿄도청에 가기 위함이였다. 도쿄도청도 구경하고 야경을 볼 수있다.
반짝 반짝한 시내 불빛을 내려다 보고 있으니 남산에서 내려다 보던 서울 야경이 오버랩되었다.

02 마모나꾸 지하철

집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도쿄의 지하철 노선표를 펼쳐보라. 한참을 보고 있노라면 꼬이고 꼬인 노선표에 속이 울렁거린다. 
그렇지만 울렁증이 가라앉고 나면 노선표 보는 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일본어에 까막눈이라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울렁증을 없애는 특별하지 않는 방법은 단지 사철에는 눈길도 주지 말고 제일 두드러지는 JR라인만 살피면 되는 것이였다.
여행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관광지가 있는 노선은 JR라인이니 도쿄에서 숙소를 잡을때도,
이동경로를 잡을때도 JR라인에서 해결하는 것이 좋다는 여행팁이 자연스럽게 성립니다.

도쿄에서 지하철을 즐기는 방법중에 하나는 '관찰하기' 이다 .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는지,
출퇴근 시간의 모습은 어떠한지,
초딩부터 고딩까지. 어떤 모습으로 하고 다니는지,
몸매 착한 언니, 오빠들은 어느역에서 주로 타고 내리는지
어떤 역에 역무원아저씨가 멋있는지
어떤 동네가 일본스러운지
별거 아닌것 같아도 이런 즐거움을 찾는 것이
여행을 풍요롭게 하는 것들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띠리리링 마모나꾸..'로 시작하는 열차 안내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03 아사쿠사에서  오다이바까지

둘째날의 일정은 일본에 머물고 있는 동생이 휴가를 내고 함께 했다.
일정은 아주 간단했지만 일본의 다양함을 볼 수 있는 일정이였다.
도쿄에 왔다면 빼놓을 수 없는 관광지 두곳 - 전통이 살아있는 아사쿠사와
현대적인 감각으로 만들어진 인공섬 오다이바를 둘러보는것이 우리의 일정이다.
서둘러 나왔지만 그리 이른 시간은 아니였던터라
아사쿠사에는 이미 많은 관광객들로 붐볐고
붐비는 관광객들과 동화되어 이리저리 시선 둘 곳을 찾아다녔다.

함께한 행복한 동행자는 올해의 운세를 점쳐보기도 했고,
나는 기모노를 입은 언니들의 뒷꽁무니를 따라갔으며
기특한 동생은 일본에 대해 알고 있는것 모르고 있는것 전부를 이야기해주려 했고
또 다른 동행자는 우리들의 이런 모습을 비디오 카메라에 담았다.

"이따다끼마스" "고치소사마데시따"를 배워가며
점심식사를 하고는 오다이바로 가는 배를 탔다.
사실 현지에 살고 있는 안내자가 있다는 건
여행의 보너스 혹은 마이너스 요소가 된다.
나 같이 별 준비없이 막무가내로 일단 가고 보자는 식의 여행자에겐  더더욱 그렇다.
맘편히 하루를 만끽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보너스 요소일 것이요
여행을 마치고 어디를 어떻게 다녀왔는지 정리를 하려면 어디를 다녀왔는지는 알겠는데
어떻게 다녀왔는지는 전혀 생각나지 않는 것이 마이너스 요소이다.
명확하지 않은 정보가 되겠지만, 우리는 아사쿠사에서 배를 타고 오다이바에 갔다.
어디서 타고 어디서 내렸는지는 앞에서 언급한것처럼 전혀 생각나지 않으니
그저 사람들 타는데서 타고 내리는데서 내렸다.
오다이바로 향하는 배를 따라 날아다니는 기러기는 석모도의 기러기처럼 과자부스러기를 잘 받아먹었고
새우깡은 아니였지만 우리는 익숙한 솜씨로 기러기를 불렀다.
겨울 볕에 모든것이 아름다워 보였으며 덕분에 로맨틱한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봄직한 상상을 할 수 있었다.
마침 은하철도 999 작가인 마치모토 레이지가 프로듀스한 히미코가  눈앞으로 스쳐지나갔고

그 시선을 따라 한편의 에니메이션으로 장면 전환되었다.

'놀고 먹고 쇼핑하고'의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는 오다이바에선 말그대로 놀고 먹고 쇼핑을 했다.
메가웹에서는 내 차라도 되는 냥 멋드러진 스포츠카에 올라타서 "야타!"를 외쳤고, 
비너스포트에 가서는 그림에 떡이라도 얼씨구나 하면서 쇼핑을 했다.
두툽한 장갑하나와 일본에서 산거야라며 자랑할 수 있는 랩스커트를 사들고는 경제활동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발길을 돌리는 곳이 어디인지 채 확인도 못하고 미로를 헤메이듯이
이곳에서 저곳으로 저곳에서 이곳으로 오다이바를 구경하고 다녔다.
피곤할 법도 한데 우리는 지칠줄 몰랐고 너무 늦지 않게 도쿄 시내로 돌아왔다.
꽉찬 하루였다고 자신있게 이야기 할 수 있을만큼의 하루였다. 

04 지브리 스트디오는 즐거워!

다른날보다 일찍 집을 나섰다.
오늘은 지브리 스트디오도 가야하고, 요코하마도 가야하고라고 계획을 세웠지만
그건 시간이 되봐야 아는 일이였다.
미타카역에서 내려 "우리는 외국인이니 지브리스트디오 당일 티켓 주세요" 라고 하며
여행사에 들러  티켓을 받아 들고는 지브리 스트디오로 향했다.
지브리까지 가는 고양이 셔틀버스도 있지만
구지 돈을 내고 버스를 타지 않았고 그 선택은 현명했다.
지브리 스트디오을 가는 길,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집들이 말을 건넨다.

"어젯밤 춥진 않았니?"라고.

지브리 스트디오 구석구석을 다니며
마치 미야자키 하야오 에니메이션의 한 장면 한장면을 건너다니는 느낌으로 여행을 했다.
옥상에는 천공의성 라퓨타. 아이들만 들어가 놀 수 있는 고양이 버스, 먼지인형들,
하늘을 날으는 붉은돼지,  그의 작업실, 수많은 스케치들...
'마치 어린 아이가 된 듯한 느낌'이라는 식상한 표현밖에 생각나는 것이 안타깝지만.
실로 그러했다. 내안에 숨겨져있던 동심이 살아난 듯한 시간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길을 잃고 싶었다.
일행들이 기념품 가게에서 물건을 고르는 동안,
건물이 한눈에 들어오는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스케치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스케치를 하는 동안
일행들은 스리슬쩍 행방불명 된 나를 찾았고
나는 의도적으로 행방불명의 주인공이 된것에 묘한 감흥을 느꼈다.

지브리 스트디오에서만 볼 수 있는 단편 에니메이션이 일정한 시간마다 상영된다.
평소에는 한편씩 상영되는데 어쩐 일인지 우리가 간 날은 이벤트의 하나로 3편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이게 왠 횡재냐! 하며 3편을 내리보게 되었고 역시나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다.
때문에 우리는 다음 일정으로 계획했던  요코하마는 다음 기회로 미루게 되었고
남은 하루를 지브리 스트디오에서  마감했다.

이번 일본 여행이 나에게 남긴 것은 '여행' 그 자체였다.

 ■   END